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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m12shi 이시현/ 영화, 책, 글 @bam12shi men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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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서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재채기를 하다가 점심에 먹은 와사비 김밥이 떠오른다. 웜업중에 티비를 보다가 김밥맛집소개 테러를 당한다. 레그 프레스에 앉아 발판이 김같다고 생각한다. 케이블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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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재채기를 하다가 점심에 먹은 와사비 김밥이 떠오른다. 웜업중에 티비를 보다가 김밥맛집소개 테러를 당한다. 레그 프레스에 앉아 발판이 김같다고 생각한다. 케이블은 왜인지 모르게 아까 그 김밥에 올라가 있던 오징어채 같다. 바벨 스쿼트를 하다가 점심에 먹은 김밥이 생각나 중량을 올린다. 점심에 먹은 김밥이 두줄이었다는게 생각나 백 익스텐션 도중에 덤벨을 주워와 세트당 횟수를 늘린다. 크런치를 하는 시야에 걸리는 레깅스 신은 허벅지가 동글게 말린 김밥 두줄 같다. 레그레이즈는 말할 것도 없다. 일립티컬 손잡이의 그립감은 정확히 김밥이다. ... #조서
운동하러 가는 길에 재채기를 하다가 점심에 먹은 와사비 김밥이 떠오른다. 웜업중에 티비를 보다가 김밥맛집소개 테러를 당한다. 레그 프레스에 앉아 발판이 김같다고 생각한다. 케이블은 왜인지 모르게 아까 그 김밥에 올라가 있던 오징어채 같다. 바벨 스쿼트를 하다가 점심에 먹은 김밥이 생각나 중량을 올린다. 점심에 먹은 김밥이 두줄이었다는게 생각나 백 익스텐션 도중에 덤벨을 주워와 세트당 횟수를 늘린다. 크런치를 하는 시야에 걸리는 레깅스 신은 허벅지가 동글게 말린 김밥 두줄 같다. 레그레이즈는 말할 것도 없다. 일립티컬 손잡이의 그립감은 정확히 김밥이다. 그러니까 내가 밤열두시에 김밥 두줄을 먹은 건 헬스장 잘못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면 미세먼지 잘못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김밥 잘못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 탓이 아닌건 확실하다.

#남탓플레이어원 #책임회피잼
니 탓이 아닌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면
확실히 확실한 니 탓이라고 보면 된다
#글 #글스타그램 #산문 #글귀 #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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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말 씩이나 될 때 쓰는 말이고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할 때에는 간지러운 귀도 귀이거니와 대꾸할 기력이 사라져 입이 고장난 자동문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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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말 씩이나 될 때 쓰는 말이고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할 때에는 간지러운 귀도 귀이거니와 대꾸할 기력이 사라져 입이 고장난 자동문처럼 열린 채로 뭐 이런게 다 있지 부터 여기 있네 를 지나 그래 있을 수도 있지 까지의 사고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때문에 자칫 일시사망의 종료타이밍을 놓치면 말 같지도 않은 말의 부연이 시작되어 나도 모르게 말인지 당근인지의 사고과정을 장비 없이 함께 등반하게 되는 2차 고문과 내 말이 다 맞아 난 신이거든 의 생착 및 분열이 순식간에 시작되므로 잠시 뇌를 꺼두는 방법이나 잠시 자리를 ... .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말 씩이나 될 때 쓰는 말이고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가 귀를 간지럽게 할 때에는 간지러운 귀도 귀이거니와 대꾸할 기력이 사라져 입이 고장난 자동문처럼 열린 채로 뭐 이런게 다 있지 부터 여기 있네 를 지나 그래 있을 수도 있지 까지의 사고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기 때문에 자칫 일시사망의 종료타이밍을 놓치면 말 같지도 않은 말의 부연이 시작되어 나도 모르게 말인지 당근인지의 사고과정을 장비 없이 함께 등반하게 되는 2차 고문과 내 말이 다 맞아 난 신이거든 의 생착 및 분열이 순식간에 시작되므로 잠시 뇌를 꺼두는 방법이나 잠시 자리를 뜨는 방법 등이 있겠만 그 중에 제일은 말싸대기로 응징하는 방법이 정신의 안녕에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자조하는데 뭐 또 그렇게 멀리로 갈 깜냥이나 되겠나 싶어 그저 오늘 다리 뻗고 잠만 자면 최고라는 합리화의 꽃밭에 이르러 눈을 감았더니 보낸 말싸대기 화끈 받은 맞싸대기 화끈 아프다 쪽팔린다 미안하다 반성과 다짐을 저번과 같은 사이즈로 출력하고 나면 잉크가 마르기 전에 복수할테니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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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싸대기 소 싸대기 된다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못해
#맛좀봐라 #지브라크리스탈파워
#영원회귀 #말 #글 #글스타그램 #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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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성 #보부아르 #역사— 여자가 더이상 씨족의 상속자를 생산할 수 없을 때, 물질적 재산(상속부동산, 지참금 등)의 일부가 될 수 없을 때 일체의 가치를 상실한다. 남편의 하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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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성 #보부아르 #역사— 여자가 더이상 씨족의 상속자를 생산할 수 없을 때, 물질적 재산(상속부동산, 지참금 등)의 일부가 될 수 없을 때 일체의 가치를 상실한다. 남편의 하녀로 전락하거나 아버지나 친족이나 후견인의 손에 떨어져 애물단지가 되어 노예와 다름없이 취급된다. 상속제도가 시작된 무렵부터 여자는 내내 비슷한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여자는 직,간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역할’만을 제도와 법률에게, 이를 만드는 남자에게 부여 ‘받았’다. 여자는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인격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도와 법률에게서 ... #제2의성 #보부아르
#역사—
여자가 더이상 씨족의 상속자를 생산할 수 없을 때, 물질적 재산(상속부동산, 지참금 등)의 일부가 될 수 없을 때 일체의 가치를 상실한다. 남편의 하녀로 전락하거나 아버지나 친족이나 후견인의 손에 떨어져 애물단지가 되어 노예와 다름없이 취급된다.
상속제도가 시작된 무렵부터 여자는 내내 비슷한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여자는 직,간접적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역할’만을 제도와 법률에게, 이를 만드는 남자에게 부여 ‘받았’다. 여자는 수단이었을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인격의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제도와 법률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독신 여성의 권리는 풍습으로 저지한다. 자기 주권을 가진 듯 보였던 잠시의 시간동안에도 여성은 투기(投企)가 아닌 무(無)를 향하고 있었다.
로마 교회는, 아담을 꼬여낸 악마로서의 여자를 만든 그리스도교의 대항마로 성모마리아를 세운다. 원시시대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잉태의 신비(vs남성의 소외로 자주성 훈련)와 신비에의 견제(남성의 자기초월 및 자기확립). 그 결과로써의 억압을 지나 도착한 곳은 다시 잉태와 신비, 즉 어머니가 된다. 주체로서의 여자가 되는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실존주의를 저변에 두고, 시종일관 타자로 소외된 채 실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여자의 역사’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내지는 그러하다’의 뉘앙스로 풀어가는 각 시대마다의 분석이 흥미롭다.
아직 제1부(사실과 신화)의 1편(숙명)과 2편(역사)밖에 읽지 못했지만 자궁을 가진 운명이 이토록 씁쓸한 이유는 역사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읽는 중간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여자로써의 나의 세계’의 결말을 오늘이라고 쓰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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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사실과 신화
제1편 숙명
제1장 생물학적 조건
‘여자란? 아주 단순한 거지.’ 단순한 공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여자란 자궁이며, 난소이다. 여자란 암컷이다. 이 암컷이라는 말은 여자를 정의하기에 충분하다. 남자의 입에서 ‘암컷’이라는 형용사는 경멸하는 말처럼 발음된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동물성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그를 가리켜 ‘저건 수컷이야!’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 한다. 이 ‘암컷’이라는 말이 경멸의 언사로 들리는 이유는 여자를 자연속에 놓아 두지 않고 그녀의 섹스(性)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p.32

🥃 여자는 모든 포유동물의 암놈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소외되고, 또 이 소외를 가장 치열하게 거부하고 있다…여자가 개체로서 자기를 주장함으로써 자기 운명에 반역하면 할 수록 그만큼 그 여자의 운명은 더욱더 무거워진다도 할 수 있다.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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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역사
두 종류의 사람이 서로 만날 때 각자가 상대에게 자기의 지배력을 강요하려 든다는 것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만약 양편이 다 이 요구를 밀고 나갈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대립의 형태를 취하든가, 아니면 우정의 형태를 취하든가 하면서 그 어느 쪽이든 간에 긴장 속에 대등 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만약 그 중 한 편이 특권을 누리게 되면 다른 편을 눌러 그 관계를 압제 속에 유지하려고 급급해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여자를 지배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된 이유도 이해된다. 그러나 어떤 특권이 남자가 이런 의지를 실현하도록 허락했는가? p.98

🥃 자신은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반복하도록 운명지어져 있으면서도 자신의 눈에는 생명이 그 자체로서 존재 이유를 가진 것 처럼 보이지 않으며, 또 그 이유 쪽이 생명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보인다는 것이 여자의 불행이다. p.103

실존자는 모든 성적 구별을 넘어선 초월의 운동 속에서 자기의 정당화를 구하는 것이다. p.103

인간의 계획은 시간 속에서 자기를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순간을 지배하고 미래를 형성해 가는 데 있는 것이다.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실존 자체를 가치로서 만들어 간 것이 남성의 활동이다. 그것은 생명의 혼돈된 힘을 이겨 내어, ‘자연’과 ‘여자’를 예속시켰다....자기 내부에 있어서 ‘타자’로서 스스로를 정의한 이 인간의 일부분에 인류는 어떠한 위치를 부여했던가? 거기에 어떤 권리를 인정했는가? p.104

#여자란 #싸우자는책아니야
#책 #독서 #책추천 #여성주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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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함의 프레임이 가진 맹점과 자기모순이 없는 사고의 종착에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맹목의 콜라보는 자기기만을 양식삼아 사유의 진화를 가로막으며 진정한 인간애마저 아스팔트 위에 너절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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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함의 프레임이 가진 맹점과 자기모순이 없는 사고의 종착에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맹목의 콜라보는 자기기만을 양식삼아 사유의 진화를 가로막으며 진정한 인간애마저 아스팔트 위에 너절하게 흩어진 찌라시로 전락시킨다. . 정직의 가치는 융통성과 결부되면 간혹 딥빡을 유발하며 촌뜨기 신세를 면치 못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만큼은 정직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의 세계’ 라고 부를 수 있는 사유의 땅따먹기가 시작된다. .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결국 ‘행동’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맥을 잘못 짚을 경우를 대비해 ... .
착함의 프레임이 가진 맹점과 자기모순이 없는 사고의 종착에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맹목의 콜라보는 자기기만을 양식삼아 사유의 진화를 가로막으며 진정한 인간애마저 아스팔트 위에 너절하게 흩어진 찌라시로 전락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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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의 가치는 융통성과 결부되면 간혹 딥빡을 유발하며 촌뜨기 신세를 면치 못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만큼은 정직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나의 세계’ 라고 부를 수 있는 사유의 땅따먹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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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결국 ‘행동’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맥을 잘못 짚을 경우를 대비해 나와 상황을 의심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으나 긁어부스럼으로 자존의 귓방망이를 날리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도록 탄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유연과 유약은 다른 말이다. 그러나 약함과 악함은 같은 말일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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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은광속으로
#극복은셀프로
#동정은캐쉬로
#배려는공짜로
#찬사는소울있게
#니체 #니체의인간학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18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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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성혐오 범죄의 서사가 나날이 새로 쓰이고 있다. 성숙한 여성은 새로운 서사의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반복되는 실수에 부끄러워 하는 일은 성숙한 남성의 몫이다. 거듭 날아오는 상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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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혐오 범죄의 서사가 나날이 새로 쓰이고 있다. 성숙한 여성은 새로운 서사의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반복되는 실수에 부끄러워 하는 일은 성숙한 남성의 몫이다. 거듭 날아오는 상처로 너덜해진 마음을 보상받기 위해 날을 세워 주고 받는 공방전은 강함이 아니라 센 척이다.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성찰하며 기초체력을 기르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열 살 꼬꼬마였던 나는 커다란 지렁이 같이 생긴(당시의 느낌으로) 성기를 꺼내놓은 성도착증 환자에게 손목이 붙들려 내 걸 봤으니 네 것도 보여달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친구와 손을 잡고 개구리 왕눈이를 빌리러 가던 여섯 살을 ... #3
여성혐오 범죄의 서사가 나날이 새로 쓰이고 있다. 성숙한 여성은 새로운 서사의 일반화를 피해야 한다. 반복되는 실수에 부끄러워 하는 일은 성숙한 남성의 몫이다. 거듭 날아오는 상처로 너덜해진 마음을 보상받기 위해 날을 세워 주고 받는 공방전은 강함이 아니라 센 척이다. 우리는 우리 위치에서 성찰하며 기초체력을 기르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열 살 꼬꼬마였던 나는 커다란 지렁이 같이 생긴(당시의 느낌으로) 성기를 꺼내놓은 성도착증 환자에게 손목이 붙들려 내 걸 봤으니 네 것도 보여달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친구와 손을 잡고 개구리 왕눈이를 빌리러 가던 여섯 살을 시작으로 고등학교때까지 노출증 환자들의 성기 모양새를 구분할 수 있을 지경이 되도록 마주쳐야 했고, 대학교 시절엔 버스에서 발기된 성기를 팔이며 엉덩이에 부벼대던 개새끼들과, 어두운 길목에서 내놓고 자위하던 성기를 치마에 부비고 도망가던 씨발새끼를 만나야 했다. 때마다 가장 컸던 것은 충격과 공포였고 차츰 불쾌감과 수치심이 번져 괴로웠다. 물론 대놓고 훑는 시선은 2017년에도 여전하고, 더 나아가 ‘좋은 게 좋은 것’ 이라던가 ‘우리니까’라는 응석부리기에서 출발해 불편을 유발하는 말과 행동들도 도처에 널려있다.
여성혐오든 인간혐오든 단순한 변태새끼든 테러리즘에 입각한 범죄는 이미 일어났고,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비상식과 싸우는 일은 나의 정신이나 육체가 죽거나 오십억 인구가 사라져야 끝난다. 지구력이 필요하다. 마음 근육을 키우라는 자기계발서의 문구에 감동했다면 종잇장처럼 하늘거리는 여자와는 도장찍고 갈라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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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연대하자는 말 보단 개개인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공동체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페미니즘을 두고 그 필요를 피력하는 것은 시대 분위기상, 과거의 집단주의로 돌아가기 더 용이해 보인다. 개인의 희망과 목표가 무용해져가는 탓에 YOLO의 Once는 오늘만 쓰고 버릴 순간으로 오해되고, 이 오해에 걸려든 허무주의자들이 깊이 숨겨놓은 '인간 근원의 열망'은 집단적 테러리즘의 먹이가 되기 십상이다. 공통된 목표로 연대감을 제공하며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존감을 달래는 우월주의가 그들을 유혹한다. 홀로코스트의 그림자가 보인다. 하지만 이 곳에는 하나의 유혹자가 없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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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정해진 단 하나의 길이 아니다. 당신은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라는 판단을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면 여성 인권 신장을 대전제로 이리저리 부딫히며 스스로의 세계를 갱신해 나아가면 될 일이다. 맹목을 경계하며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것은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대전제가 아닐까. 어째 극복을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오래도록 지속되어왔던 여성억압은 제도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페미니즘을 외치기 전에 스스로를 성찰하며 진정한 강자가 되어, '나와 너' 단 둘로 구성된 가장 최소단위의 공동체에서부터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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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은 두렵다. 내가 믿었던 것,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는 일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존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이지만 그것이 성찰의 시작이다. 기존의 개념을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사유’를 가진 것이 인간 존재의 특권 아니던가. 어차피 시행착오 다음엔 또다른 시행착오가 기다리고 있다. 시행착오들의 점으로 이루어진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 불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 저 편에, 여성과 남성이 아닌 ‘인간’이 되어 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갖는 것이 상식인 세상이 있는 거라면, 나는 상처도 부끄러움도 기꺼이 꼭꼭 씹어 다음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함으로 이 시대에 서 있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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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84년생이시현 #끝
#난분명자성이라고말했다 #니가거기에동의를하면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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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세번째 #산문 #글 #글스타그램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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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렇게 나르시시즘과 감상주의가 콜라보된 해괴망측한 페미니즘이 탄생한다. 이 기형적인 사고에 내재된 필연적인 규격화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맹목이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지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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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렇게 나르시시즘과 감상주의가 콜라보된 해괴망측한 페미니즘이 탄생한다. 이 기형적인 사고에 내재된 필연적인 규격화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맹목이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지면 안정을 지키기 위한 합리화가 시작된다. 방금 전에 주장한 논리를 곧바로 뒤집으며,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핏대를 세운다.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 선행될 리 없는 사고의 구조다. 여성인 나 스스로 앞장서서 구시대의 비상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꼰대가 만들어지는 탄생의 신비다. 성찰이 결여된 기형적인 신념은 일을 몇 배는 더 번잡스럽게 만든다. 프로크루스테스를 ... #2
이렇게 나르시시즘과 감상주의가 콜라보된 해괴망측한 페미니즘이 탄생한다. 이 기형적인 사고에 내재된 필연적인 규격화는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맹목이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지면 안정을 지키기 위한 합리화가 시작된다. 방금 전에 주장한 논리를 곧바로 뒤집으며,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핏대를 세운다.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 선행될 리 없는 사고의 구조다. 여성인 나 스스로 앞장서서 구시대의 비상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꼰대가 만들어지는 탄생의 신비다. 성찰이 결여된 기형적인 신념은 일을 몇 배는 더 번잡스럽게 만든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처리한 테세우스의 재림이 간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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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억압되어 갈 곳을 잃었던 대한민국의 리비도는 포르노(야동아님)로 소비’하거나’ 소비’되는’ 대립의 서사를 만들었다. 한국형 집단주의의 무간격은 타자의 경험을 극히 소수에게만 허용했다.(허용이라기보단 배척으로 개인을 고통속에 던져 스스로 깨우치게 한 것에 가깝지만) 긴 시간동안 다수의 무의식에 스며든 『성=포르노』의 공식은 타자성 안에 필연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에로스마저 포르노로 인식한다. '성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는 모든 표현은 여전히 인격없이 전시가치만 지닌 포르노로 소비되거나, 피해의 서사가 실린 지탄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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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적인 관점에서 균형잡히고 아름다운 신체는 눈길을 끈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알고 드러내는 표현이 잘못일 리 없다. 포르노로 소비되기 위해 아름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인종들은 이를 공유하며 저속한 언어로 낄낄대거나, 섹스나 하자는 식의 메세지(카톡이든 SNS든 말이든 모든 소통 수단)를 날리며 타자의 에로스를 포르노로 전락시킨다. 이들 중 또 몇몇은 포르노로 소비되었던 서사를 내세워 피해자 궐기대회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격을 시작한다.(포르노를 포르노로 소비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포르노를 포르노로 소비하지 뭘로 소비하나.) 집단주의의 규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포르노화된 서사를 주고 받으며 허우적대는 무리들이 감을 놓네 배가 어떻네의 오지랖으로 개개인의 가치관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등을 펴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성숙한 여성들의 난제 위에 난제를 얹는다. 이들에게는 타자가 없으므로 에로스도 없다. ‘옷을 왜 그렇게 입었느냐’라는 투의 책임전가로 성폭행 피해 여성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는 사고 역시 포르노화에 기반한 후져먹은 의식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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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처(사회적,개인적 둘 다)와 마주보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억압 당하는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에게 똑같은 억압을 강요한다. 이것이 모든 남성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만드는 사고다. 목소리를 높여야 할 곳은 성애의 세계에 포르노만 존재하는 ‘낡은인종’들의 의식 개혁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강자와 약자로의 지루한 회귀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든 사람과 사물이든, 모든 관계는 유혹에서 출발해 매혹되거나 매혹되지 않는 서사다. 누군가 나에게 매혹되지 않는다면 매혹되지 않는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유혹하는 나의 방식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우리는 총체적 스몰사이즈가 가진 유혹인자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안전을 보장받는 아이가 아니다. 여성해방을 외치면서, 남성을 사고의 중력 한가운데에 두고 의존하던 구시대의 ‘위성’포지션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정말로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를 인생 전반에 걸쳐 실천하고 있는 객체들은 논외다. 그 종자들은 내가 뭘 원하고 있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행동(표현)을 하고 있는지 '왜'라는 질문조차 던지지 않는다. 그저 한 평 짜리 합리화의 꽃밭에 앉아 무언가를 한다. 계속 한다. ‘인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한다.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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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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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페미니스트 #산문 #글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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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 살기 바빠 죽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어찌 살건 크게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충실하기에도, 넓어지는 세계를 씹어 삼키기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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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 살기 바빠 죽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어찌 살건 크게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충실하기에도, 넓어지는 세계를 씹어 삼키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충분히 바쁜 하루하루에 진을 빼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온다. 어쨌거나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자인 것이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세상은 여러 매체를 통해 노출되고 있지만 자성의 목소리를 타이틀로 세운 컨텐츠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극단적인 언어로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똑같이 되받아치며 번지는 비생산적인 설전으로 곳곳이 시끄럽다. 잘잘못 가리기로 변질된 ... #1
나 살기 바빠 죽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어찌 살건 크게 관심도 없고 여력도 없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충실하기에도, 넓어지는 세계를 씹어 삼키기에도 짧은 인생이다. 충분히 바쁜 하루하루에 진을 빼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온다. 어쨌거나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여자인 것이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세상은 여러 매체를 통해 노출되고 있지만 자성의 목소리를 타이틀로 세운 컨텐츠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극단적인 언어로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똑같이 되받아치며 번지는 비생산적인 설전으로 곳곳이 시끄럽다. 잘잘못 가리기로 변질된 전투의지 때문에 충고도 자성도 침묵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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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또래의 여성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서사 안에서 자라왔다. 권위적인 할아버지와 아버지. 문을 달아 나누어 둔 오래된 주공아파트의 부엌. 소통이 차단된 곳에서 혼자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고 새벽마다 연탄불을 살피던 엄마. 명절이며 제사마다 여자들만 주방에 들어가 제수를 챙기는 일은 그 때도 그네들에게 불편을 유발하긴 했으나, 노릇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치게임이나 겨우 시작하던.
어느 날엔가의 엄마는 바깥 일은 절대 안된다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이처럼 발을 구르며 울기도 했다. 빌어먹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애꿏은 암탉을 잡아대던 전근대적인 풍조가 만연한 시절이었다. 할아버지의 탓을 할 일도, 엄마의 탓을 할 일도 아니다. 개인이 들고 일어서야 할 비상식의 밀도가 터무니없이 높았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가끔, 나를 쌍팔년도로 향하는 웜홀로 밀어 넣는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다 그렇게 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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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세월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고 엄마를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딸로 태어나 애잔하다. 하지만 지난했던 서사를 내세워 이타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현상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가 싸워야 하는 상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을 잠재적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드는 비상식이다. 대등한 존재로 서서 남성과 여성에게 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라벨을 벗겨내야만 진영논리의 무한궤도에서 탈출할 수 있다. 약자의 포지션을 버리지 않으면 여성해방은 그만큼 늦어진다. 침대 밑에 숨어 사는 상처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야 한다. 없는 살림 야금야금 축내는 게 그년이다. 자기기만의 뒷면에 치유되지 않은 영혼을 둘러싼 감상주의의 소용돌이가 있다. 이타주의에 기대어 '내 편'만 찾는 행태는, 이타주의 속에 담긴 '누군가를 아끼고 살피는 인정' 내지는 '휴머니즘' 이라는 가치를 변기통에 처박는 일과 다르지 않다. 고통은 소화시켜야만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사고의 중심에서 '상처받았으니까'를 치우지 않으면 어떤 발언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대체로 그런 사고는 표리부동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응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주장의 일관성을 기대하기에는 글러먹은 시발점이다. 시발점에 쌍시옷 쓰고 싶다. 탈서사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목적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알아'주길' 바랄 게 아니라 알아'먹게' 이야기를 해야 귀를 세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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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what to say는 "여성 인권 신장"이다. 이 간단한 논리에 성찰이 결여된 how to say(주로 보상심리에서 기인한)를 what to say인양 설파하는 이들이 페미니즘을 달궈 주물에 넣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지리멸렬한 싸움을 하고 있어야 하나. 페미니즘의 특성 때문에 남녀 각자의 입장에서 성찰해야 하는 궤가 다를 뿐, 목적지는 동일하다. 무조건적인 지지만이 옳다는 착각은, 주체를 삭제시킨 객체만이 즐비한 시체 더미 한가운데서 도그마 잔치를 벌이는 희극에 불과하다. ‘내 편’임을 자처하면서 여성에게 주권이 없었던 과거를 재현하며 기시감을 선사하는 이들보다, 그 나름의 소화불량으로 여성을 혐오하고 까내리는 것 외에 자존을 세울 방법을 모르는 무리들이 차라리 낫다. 그 가여운 무리들은 지속적인 불편을 유발하며 더 많은 여성들에게 깨어날 계기와 의지를 제공한다. 페미니즘은 종교가 아니다. 여성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구원자도 아니고, 무간격의 동일자도 아니다. 적당한 거리에서 경계하고 의심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타자로서의 남성’이다. 나는 그것을 '관계'라고 부른다. 나를 알게 하고 나를 나일 수 있도록 일깨우는 대자존재. 동일자와는 '만날' 수 없다. 동일자는 거울 속에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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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글 #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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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남자 #사쿠라바가즈키 - 이른 겨울부터 파도가 겹겹이 얼어 얼음의 땅이 펼쳐지는 훗카이도 몸베스. 유빙이 부딫치고 갈라지며 천둥처럼 울리고, 하얗게 얼어가며 멀어지는 해안선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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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남자 #사쿠라바가즈키 - 이른 겨울부터 파도가 겹겹이 얼어 얼음의 땅이 펼쳐지는 훗카이도 몸베스. 유빙이 부딫치고 갈라지며 천둥처럼 울리고, 하얗게 얼어가며 멀어지는 해안선에 어디까지가 뭍이고 바다인지 알 수 없어지는 북쪽마을. 때마다 경계가 사라지는 곳에서 해일로 가족을 모두 잃은 하나와 그녀의 양아버지 준고의 사랑이, 모든 것이 시작된다. . 끝에서부터 15년 전을 향해 더듬어가는 소설의 여정은 사랑의 환상이 피어나던 과거를 회고하는 이별 후의 어느 날과 닮아있다. 가슴 뻐근한 통증 뒤에 찾아오는 덧없음의 미학은 터부시되는 하나와 준고의 사랑이 ... #내남자 #사쿠라바가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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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겨울부터 파도가 겹겹이 얼어 얼음의 땅이 펼쳐지는 훗카이도 몸베스. 유빙이 부딫치고 갈라지며 천둥처럼 울리고, 하얗게 얼어가며 멀어지는 해안선에 어디까지가 뭍이고 바다인지 알 수 없어지는 북쪽마을. 때마다 경계가 사라지는 곳에서 해일로 가족을 모두 잃은 하나와 그녀의 양아버지 준고의 사랑이, 모든 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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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서부터 15년 전을 향해 더듬어가는 소설의 여정은 사랑의 환상이 피어나던 과거를 회고하는 이별 후의 어느 날과 닮아있다. 가슴 뻐근한 통증 뒤에 찾아오는 덧없음의 미학은 터부시되는 하나와 준고의 사랑이 보통의 사랑과 다름없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래야만 하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저마다의 사랑이, 저마다의 시절이 있다. 사랑이 넘실거리는 이곳에서 하나와 준고처럼 모두가 ‘내 사람’의 실마리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가족에게서 채울 수 없었던 둘의 오랜 갈증은 서로를 구원자로 만드는 비극을 낳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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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결핍은 언제나 뿌연 시야를 동반한다. 사소한 것에 온갖 의미가 깃들고 발톱을 세워야 할 타이밍에 맥없이 끌려가며 절박함과 비례하는 상실의 불안은 상대를 뿌리까지 옭아맨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지나치게 투영하는 행위는 사랑을 가장한 폭력이 되어 ‘함께’의 가치도 ‘혼자’의 가치도 퇴색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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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오로지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타인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심연에 잠긴 당신에게 내미는 손의 위로가, 무너질 듯 위태로울 때 스러져 안기고 싶은 품의 위로가 구원이 아니면 달리 무엇일까. 생을 송두리째 구원하고 구원받고자 했다 한들 시절의 특권으로 남아있는 사랑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의 혼까지 녹아들어 그대로 한사람이 되고 싶다던 하나의 간절함을 나는, 사랑 이외의 다른것으로는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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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의 세계에 고착된 그들의 시절을 들여다보며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을 떠올린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지은 두 사람의 세계. 한 사람이 사라지자 언어의 독방에 갇혀버린 남은 사람. 준고라는 모국어를 잃은 하나는 새로운 언어를 배웠을까. 어느 날 북쪽 마을로 훌쩍 떠나 뭍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을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중년의 하나를 상상해 본다. 나락같은 이 이야기가, 경계없이 사랑하던 시절을 향한 그녀의 그리움이 적어낸 길고 긴 회상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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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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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남모르게 어른이 되는 아이 같은 기분이었다. 어른이지만, 인간은 아니었다. 나는 준고의 딸이며 엄마이며, 피로 가득한 주머니였다.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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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고가 이 아이의 무언가를 계속 빼앗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형태는 없지만 소중한 어떤 것. 혼 같은 것을. 빼앗기며 자라, 커다란 공동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빼앗아, 살아남는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른이지만, 성숙하지 않고 썩어 갈 뿐이다.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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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 죽는다면 여기서 시간이 멈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단단하게 이어져 있는 지금 죽으면, 차갑고 외로운 뼈가 되어서도, 그 후에 북쪽 땅과는 거리가 먼, 한없이 먼 메마른 땅에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이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도, 다시 태어나도. 몇 번이든, 몇번이든 나는 아빠의 딸로 태어나고 싶었다.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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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매일 뭘 하면서 지내죠?”
“......매일, 후회.”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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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앞으로 누구에게서 뭘 빼앗으며 살아가면 좋을까.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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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상수상작 #소설 #책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평 #독후감 #글 #글스타그램 #171112 #밤열두시 #경계 #사랑 #구원 #위로 #내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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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변했다. 숨을 들이키고 그 방안을 훑어보던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빠르고도 확실하게 변했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발로 금갑을 누르고 화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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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변했다. 숨을 들이키고 그 방안을 훑어보던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빠르고도 확실하게 변했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발로 금갑을 누르고 화살을 한 대, 두 대, 세 대... 도합 일곱 대의 화살을 쏘면서 나는 분노하여 이성을 잃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로 둘이 한꺼번에 죽지는 않겠지. 두 대로도 단번에 죽어 넘어지지는 못하겠구나. 그렇다면 세 대, 네 대... 나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계산해서 한 대 한 대를 쏘아 넣었고 결국 그 둘은 살아서 금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자주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변한다. 그 깊었던 애정이 ... .
“그 순간 내 속에서 무엇인가가 변했다. 숨을 들이키고 그 방안을 훑어보던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빠르고도 확실하게 변했다. 그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발로 금갑을 누르고 화살을 한 대, 두 대, 세 대... 도합 일곱 대의 화살을 쏘면서 나는 분노하여 이성을 잃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로 둘이 한꺼번에 죽지는 않겠지. 두 대로도 단번에 죽어 넘어지지는 못하겠구나. 그렇다면 세 대, 네 대... 나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계산해서 한 대 한 대를 쏘아 넣었고 결국 그 둘은 살아서 금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람은 자주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변한다. 그 깊었던 애정이 그렇게 단숨에 무언가로 변해버릴 줄은 그 이전에는 단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배신감이라고 생각하나? 애정이 너무 깊어 그만큼의 미움으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것이 어쨌단 말이냐. 무엇이 어떻게 되었던 간에 원래의 마음이 무엇이었건 간에 이미 그것은 애정이 아닌 무언가로 변해버렸는데. 이 구운 고기가 이 전에는 살아있는 양이었다고 해도 도로 양으로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니잖느냐. 그 정을, 사랑을 되씹어 보았자 그토록 쉽게 변하는 마음에 대한 환멸 뿐이다. 안고 있어 무엇하겠느냐. 그 돌이킬 수 없음에 소스라칠 뿐.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마음의 하찮음에 몸서리치며 어리석고 무거운 몸을 주체하지 못해 방황할 뿐.
...위야. 네 누이는 죽었다. 그것이 네 탓이라 평생을 자책한다 해도 보아는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계속해 자책한들 무엇하겠느냐. 사람이란, 어차피 그 정도인 것이다ㅡ하고 묻어둘 수는 없느냐.”
“지금 제가 모시는 분은 잊을 수도, 묻을 수도 없는 것과 싸우고 있는 분입니다. 공의 병사로 있을 때 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그분을 모시는 것은. 하지만 덕분에 저는 죄책감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은 듯 합니다. 후회하고 자책함으로 해서 열리는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생각입니다.”
“너는...어찌 그리도 네 아비를 빼닮았느냐. 나는 네 아비를 무척 존경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었지만 그 무예와 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력을 업지 못하고 홀로 장수의 자리에 있었던 탓에 상관의 실책을 모조리 뒤집어쓰고 참해지면서도, 끝내 나에게 한가닥의 도움도 청하지 않을만치 네 아비는 단정하고 꼿꼿하고...허무한 사람이었다. 그 한결같은 결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아껴왔지만, ...위야, 한편으로는 또 그렇지 않겠느냐. 변하지 않는 사람은, 변하는 사람보다 더욱 매정한 법이다. 그러니 너는 언젠가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바란다. 네가 변했던 것은 너의 인간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저 오로지 인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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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집 #윤지운
#photography #AndreasLevers #AtNight

변하는 것이 만물의 본질이라면 나는 ‘변함’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그릇이었으면 좋겠다. 재질은 고무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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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을내어서무엇하나 #성화는내어서무엇하나 #인생일장춘몽인데
#만화책 #책추천 #책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사랑 #배신 #글 #긴글 #글스타그램 #1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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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감은틀리지않는다 #줄리언반스 - 우리가 믿는 '사실'에는 개개인의 판단과 해석, 때로는 취향까지도 배제될 수 없다. 상황의 너머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황에 연루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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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틀리지않는다 #줄리언반스 - 우리가 믿는 '사실'에는 개개인의 판단과 해석, 때로는 취향까지도 배제될 수 없다. 상황의 너머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황에 연루된 열명의 개인이 있다면 열명 모두의 입장을 짐작하거나 헤아리려 드는 일 만큼 미련한 짓이 또 없다. 그 역시 나의 식견에 따른 판단과 해석일 뿐이지 않나. 내가 믿는 사실이 나의 '각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에 카피를 더해 보자면, 이를 모른 채 백발의 노인이 된 [토니 웹스터의 자기성찰 대모험] 쯤 되겠다. 아, 이름만 바꾸면 어지간한 영화가 다 그렇던가. ... #예감은틀리지않는다 #줄리언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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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는 '사실'에는 개개인의 판단과 해석, 때로는 취향까지도 배제될 수 없다. 상황의 너머를 볼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그러나 상황에 연루된 열명의 개인이 있다면 열명 모두의 입장을 짐작하거나 헤아리려 드는 일 만큼 미련한 짓이 또 없다. 그 역시 나의 식견에 따른 판단과 해석일 뿐이지 않나. 내가 믿는 사실이 나의 '각색'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영화에 카피를 더해 보자면, 이를 모른 채 백발의 노인이 된 [토니 웹스터의 자기성찰 대모험] 쯤 되겠다. 아, 이름만 바꾸면 어지간한 영화가 다 그렇던가. 뭐 여튼,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는 이들이 명도 길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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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 포인트는 기억과 사실의 대비에서 오는 반전보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공감능력을 잃은 소위 '센스없는' 노인의 일상이다. 다양하기에 혼탁한 세상을 제 입맛대로 정제한 순도 99.8%의 꼰대. 자기 역시 온 세상의 미꾸라지 중 하나인 것을 모른 채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는 노인에게 도착한 한 통의 편지로 사건이 시작된다. 소설의 구성과 달리 영화는 토니의 기억속에서 각색된 과거와 그 기억 그대로 노인이 된 현재를 적절하게 버무려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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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인물들은 그와의 만남에서 하나같이 벽과 대화하는 신비한 경험을 하는데 그 광경을 '목격'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수 있겠다. 천진난만한 토니둥절과 '말해 뭐하나 알아듣지도 못 할 거' 하는 다정하거나, 황당해 하거나, 한심해 하는 표정들이 깨알 재미. 하지만 사건과 함께 토니의 일상도 눈여겨 쫓다 보면 백이면 백 스스로의 모습을 적어도 한 번쯤은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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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그렇듯 원작에 비하면 다소 아쉽지만 영화 나름의 맛이 있어 비교하다가 빠져들게 된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토니의 세밀한 장광설과, 시간과 기억과 역사에 관한 깊은 사유를 만나고 싶다면 소설도 강력하게 추천한다. 토니 웹스터라는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개명시켜주고 싶은 주변 인물이 있다면 그에게 선물하는 것도 추천하지만, 그가 계몽될 확률과 그렇지 못할 확률은 경험상 49:51이었으니 참고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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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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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론, 책임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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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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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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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애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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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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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체하며 역사는 승자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을 때, 조 헌트 영감이 뭐라고 대답했던가? 그는 '그게 또한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기도 하다는 것 기억하고 있나?'라고 했다. 우리의 개인적 삶을 대입해야 할 때 그 말을 제대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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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투송 #touchme -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꿈도, 사랑도, 그 곳에서 오는 희망조차도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실재이고 허구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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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투송 #touchme -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꿈도, 사랑도, 그 곳에서 오는 희망조차도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실재이고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곳에 꿈과 사랑과 희망으로 은유된 당신이, 내가, 만질 수 있는 실체로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어리석고 어쩔 수 없는 몸짓. . 꿈과 사랑과 현실의 내러티브로 마음을 흔들던 라라랜드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청춘이 아니며 이들의 무대는 꿈이 아니다. 지난한 인생의 복판에서 무엇인가 '붙잡고 만질 것'이 필요한 우리 모두를 닮아있다. 물 속인지 물 밖인지 ... #송투송 #touch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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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꿈도, 사랑도, 그 곳에서 오는 희망조차도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는지도 모른다. 무엇이 실재이고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곳에 꿈과 사랑과 희망으로 은유된 당신이, 내가, 만질 수 있는 실체로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어리석고 어쩔 수 없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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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사랑과 현실의 내러티브로 마음을 흔들던 라라랜드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은 청춘이 아니며 이들의 무대는 꿈이 아니다. 지난한 인생의 복판에서 무엇인가 '붙잡고 만질 것'이 필요한 우리 모두를 닮아있다. 물 속인지 물 밖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선과 샹들리에에 걸려 빛나는 샌들, 연인의 허리춤에 다리를 엮은 채 거꾸로 매달려 바라보는 세상은 뒤집어져 있는 것일까 바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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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허무를 견디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을, 차라리 생존에 가까운 단편들을 나열한다. 그렇기에 조금은 날 것 같고, 상당히 두서가 없으며, 몹시 이해되기에 진부하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은 소모되는 섹스를 지탄하며 젊은이들에게 지고한 사랑을 전하고, 젊은이들은 살기 위해 사랑과 섹스를 이용한다. 어느 누구를 비난할 수 있나. 사랑도 살아가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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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의 모든 것과 대립한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삶이 던지는 [의미]와 [무의미]의 기로에서 삶에 온통 사랑을 부여해 죽음으로 이를 증명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를 흔드는 모든 것들은 얼굴에 부딪쳐 오는 삶의 부조리를 견디느냐 견딜 수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랑에서 파생되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 사랑이 삶의 문제거리가 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송투송 역시 오직 사랑이 가진 가치가 아닌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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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지나가는 길에 매 시선이 클로즈업 된다. 이 순간 이곳에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누군가에게 그 무엇인가에게 오감을 활짝 연다. 노래에서 다음 노래로. 사랑에서 다음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과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절망. 그 지루한 반복 안에서 삶이 허무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다음 은유에서 또 그 다음의 은유로. 스스로의 인생을 들여다 본 듯한 사람이 나 뿐이었을까. 영화관을 나서던 밤, 누구든 그 무엇이든 만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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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두가 눈을 감고 손을 뻗어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밤이길 바래본다. 머리칼을 경계로 내려온 이마의 굴곡과 보송한 눈썹, 시선을 숨긴 눈꺼풀, 불거진 코의 시작과 뾰족하거나 둥근 끝, 인중과 만나는 윗입술에 숨은 크고 작은 갈매기와 형언할 수 없는 혀의 감촉, 아랫입술의 존재감, 까끌하거나 매끄러운 아래턱을 거슬러올라 곱게 말린 귓바퀴, 툭 하고 떨어지는 목덜미의 계곡과 쇄골로 이어지는 능선, 그 아래 곳곳에 자리한 높고 낮은 언덕들까지. 당신과 그가 어떤 [의미]로, [존재]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확인 받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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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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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주관적인 #영화 #영화추천 #영화리뷰 #영화감상 #삶 #사랑 #연애 #글 #글스타그램 #긴글 #170726 #밤열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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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여섯 살, 새 학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봄의 초입에 아빠가 쓰러졌다. 길다면 길었지만 별 일 아닌 듯 짧기도 했던 사흘이었다. 아빠는 그 복작거리던 병실에서 미동도 없이 삼일을 채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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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여섯 살, 새 학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봄의 초입에 아빠가 쓰러졌다. 길다면 길었지만 별 일 아닌 듯 짧기도 했던 사흘이었다. 아빠는 그 복작거리던 병실에서 미동도 없이 삼일을 채우고 숨을 놓았다. 중환자실을 나서는 엄마는 누군지 모를 친척들에게 양 팔을 맡긴 채 병원의 찬 대리석 바닥으로 빨려들어갈 듯 무너지고 있었다. 걸음마다 힘주어 엄마를 지나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의사 한 명이 아빠 위에 올라 앉아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침대 오른편에 겹겹이 쌓인 모니터들 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거라곤 숫자 0과 자로 그은 듯 곧은 선 뿐이었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아랫층 ... .
열 여섯 살, 새 학기를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봄의 초입에 아빠가 쓰러졌다. 길다면 길었지만 별 일 아닌 듯 짧기도 했던 사흘이었다. 아빠는 그 복작거리던 병실에서 미동도 없이 삼일을 채우고 숨을 놓았다. 중환자실을 나서는 엄마는 누군지 모를 친척들에게 양 팔을 맡긴 채 병원의 찬 대리석 바닥으로 빨려들어갈 듯 무너지고 있었다. 걸음마다 힘주어 엄마를 지나치며 안으로 들어섰다. 의사 한 명이 아빠 위에 올라 앉아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침대 오른편에 겹겹이 쌓인 모니터들 중 내가 알아볼 수 있는거라곤 숫자 0과 자로 그은 듯 곧은 선 뿐이었다.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아랫층 화장실에 숨어 작게 울었다. 내가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면 0이 두자리가 되고 반듯했던 선이 춤추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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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추스르고 올라왔을 때, 중환자실에서 흰 면포로 덮인 침대가 밀려나왔다. 온통 하얀색이라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침대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모호한 존재 위에 엎드려 다시 온 몸으로 흐느꼈다. 오른편에서는 이모부가 담당의와 이야기중이었다. 의사는 아빠의 오랜 습관이었던 술과 담배를 언급하며 이 상황이 어쩔수 없는 결과임을 받아들이길 권했다. 면포 아래의 얼굴이 아빠라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엊그제까지 사춘기였던 내 앞에 산처럼 버티고 있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생기를 모조리 잃은 침대에 소복하게 누워있는 모습은, 눈으로 보고는 있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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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빈소에는 엄마가 홀로 핀 들꽃처럼 앉아 하얀 통곡을 하고 있었다. 꽃이라고는 엄마 하나 두고 단상 위에서 웃고 있는 아빠를 보자 다리가 휘청였다. 그제야 어제가 사실이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빈소에 앉아서는 넋을 놓다 울다가의 반복이었다. 친구들이 찾아와 울어주기도 조금 웃겨주기도 했고 열 두 살이었던 남동생은 동갑내기 친척동생과 근처 오락실에 들락거렸다. 고인을 보내는 의식은 각기 다른 형태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염을 하던 날엔 아빠의 얼굴을 닦아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빠 잘가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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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는 야트막한 선산이었다. 발 아래 깊은 곳에 아빠를 놓아두고 흙을 켜켜히 쌓아올리며 이곳과 구분짓는 일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유난히 냉랭한 산자락의 봄바람이 마음도 한켠 베어가 다시는 돌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침내 풀 하나 없는 마른 둔덕이 봉긋하게 솟아 올랐다. 우리는 베이고 남은 마음마저 전부 떼어내 잔디 대신 덮어두고, 전과 같으며 전과 같지 않은 일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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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보다 더 길고 낯선 고비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도 벅찬 와중에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상실은 날을 세우고 시도때도 없이 남은 가족들을 습격해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했다. 자식을 앞세운 할아버지는 수집하던 찬장의 술을 비웠고 엄마는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마음을 안아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동생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울다가, 우는 것에 지치다가, 익숙해질 무렵 즈음에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처럼 세상은 갱신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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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사람이 기억을 마모시켜 슬픔보다는 당신이 없다는 사실만이 동그랗게 소실점으로 남아있다. 상실과 투닥거리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모두 남은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 덕이라 해야할지 죽음은 삶과 이음동의어라는 것을 조금 일찍 알게 되었다. 죽음은 산 자들의 것이었다.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죽음을 상기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유난을 떨고 있다. 언제일지 모를 날, 울고 있을 이들을 위해 되도록이면 많은 순간들을 남겨 두어야지. 상실의 시간 내내 사랑한 기억으로 살아있게 하던 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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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는 오늘을 상상하며 애닳는 일이 잦아들거라고 아직도 장담할 수 없다. 스무해가 다 되어도 만약은 불현듯 찾아와 결코 알 수 없을 세계를 동경하게 한다. 짙어지기만 하는 그리움은 세월의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끝내 놓아버리고 말았던 마흔 둘이 되면 더 잘 알게 될까. 서른 넷의 나에게 당신은 불러도 돌려세워 마주볼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나의 아버지로 그렇게 없고 그렇게 있다.
부재하며 존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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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bam12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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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18 #아빠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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