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싸 질사 문성우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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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누워있었다. 비 오는 날은 으레 그런 식이다. 무정하게 잘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세상마저 축축 처지면 나는 바닥에 눌러 붙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일어설 의욕이 나지 않는다. 비는 비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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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누워있었다. 비 오는 날은 으레 그런 식이다. 무정하게 잘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세상마저 축축 처지면 나는 바닥에 눌러 붙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일어설 의욕이 나지 않는다. 비는 비대로 세상의 윤활유 역할을 하겠지만 나를 순환시키지는 못한다. 어제가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나는 젖지 않는다. 말끔해지지도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세상과 얼마나 동떨어진 인간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세상의 기후가 나를 비껴간다. ‘예외’란 바랄수록 멀어지는 희망이다. 체념이 밥 먹는 것보다 쉽고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된다. 남아있던 두통약을 죄 먹어 ... 이틀 내내 누워있었다. 비 오는 날은 으레 그런 식이다. 무정하게 잘 돌아가는 듯 보였던 세상마저 축축 처지면 나는 바닥에 눌러 붙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일어설 의욕이 나지 않는다.
비는 비대로 세상의 윤활유 역할을 하겠지만 나를 순환시키지는 못한다. 어제가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나는 젖지 않는다. 말끔해지지도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세상과 얼마나 동떨어진 인간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세상의 기후가 나를 비껴간다.
‘예외’란 바랄수록 멀어지는 희망이다. 체념이 밥 먹는 것보다 쉽고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된다.
남아있던 두통약을 죄 먹어 치웠다. 건성으로 끼니를 때우고 10시마다 야식을 먹었다. 그런 내가 싫었고, 나는 내가 또 망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망했으니 있는 힘껏 망해볼까,
건방진 오기를 부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진심으로 내일이 막막했지만 솔직히 그런 건 잠들면 다 그만이었다. 잠이 좋은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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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게임 같은 꿈을 연달아 꾸었다.
치고받고,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열심히 싸웠는데 레벨업을 코앞에 두고 눈을 떴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속이 뜨거울 만큼 열이 받아서 단박에 침대에서 내려왔다. 씩씩거리며 방을 나서다 문 옆 전신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서야 멈칫했다. 라면발처럼 퉁퉁 부은 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어이가 없었다. 산발된 머리를 손으로 빗어보다 포기했다. 도무지 수습될 몰골이 아니다.
용사처럼 욕실로 들어가 전투적으로 샤워를 마쳤다.
토너 팩을 붙이고 바디로션을 발랐다. 세탁물을 세탁실 바구니에 넣고 방으로 돌아와 타올 드라이를 했다. 기초 화장품을 바르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렸다. 욕실에서 나오니 믹서기 소리가 요란했다. 소리에 끌린 듯 거실로 나가서 엄마가 만들어준 토마토 주스를 마셨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나갈 시간.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배웅하러 나오는 엄마에게 뒤질세라 서둘러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었다. 수고해, 응 있다 봐, 살가운 인사를 나누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을 누르고 내렸다. 아파트 입구로 향해 걷다 멀찍이 보이는 파란불에 무턱대고 뛰었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얼른 탑승했다. 빈 구석 자리에 앉아 휴대폰에 두 눈을 박았다.
버릇은 방부제 없이도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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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하고 내리니 도서관 부근이다. 달리 갈 곳이 없으니 결국 도서관이다. 기왕이면 좋은 자리가 좋겠고, 기왕 앉았으니 뭐라도 써야 귀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결정하는데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체념이 밥 먹는 것보다 쉬워서 그렇다. 그러려니 하면 정말 그러려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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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예외’란 바랄수록 멀어지는 희망이란 뜻과 같다. 그런 건 바라지 않는다.
덕분에 늘 그랬던 하루가 늘 그렇듯 시작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오늘은 이틀의 공백이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구태여 어제를 곱씹지 않는다. 그건 나의 오랜 버릇이다. 어제의 비 소식은 오늘의 내가 알 바 아니다.
오늘은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분다. 절로 외투를 여미게 되는 한기다. 외투 안에 공처럼 웅크려 오늘치의 노동을 되새긴다. 나는 오늘 빨리 귀가할 것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써야한다. 가는 길엔 두통약을 살 것이다. 잊지 않게 손바닥에 적어두는 게 좋겠다. 고작 그 정도의 목적만을 가지고 시간을 밀며 나아간다. 한심하지도 뿌듯하지도 않다.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런 하루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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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완전히 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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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이 잃어가는 내가, 내가 누린 그 모든 감정들이 불현듯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또 올지도 모르겠지만(그건 내 생각보다도 자주 찾아왔다) 그 또한 그러려니 넘길 것이다.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부를 기록하기엔 나도 내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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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기대어 버티는 날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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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미 상실감에 익숙해졌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편하니까 어쩔 수 없다. 어제의 나를 잊는 게 오늘의 내가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다. 쓰고 보니 좀 슬픈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편하고 싶고, 이미 여러 모로 망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망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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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나쁘다고 말하면 나는 더 이상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내가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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